박세당의 조부. 자는 자수(子粹), 호는 서포(西浦).
사재감정 박응천(朴應川)의 아들이며 금주군(錦州君) 박정(朴炡)의 아버지

1589년(선조 22)28세에 진사를 거쳐 이듬해(선조 23) 증광별시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에 들어갔다. 이후 성균관전적,직강,예조좌랑·병조좌랑 등을 차례로 지내고, 경기도사,수안군수에 이어 인천,부평,남양 등의 부사를 지냈다.

광해군이 즉위한 후 그를 대사간에 임명하였으나 박동선은 광해군의 패륜행위에 반대하여 관직을 사양하였다. 인조반정이 일어나자 반정측에 참여하였고, 이듬해인 1624년(인조 2) 이괄의 난 때에는 병조참의로서 인조를 모시고 공주로 피난하였다.

1627년에는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인조를 모시고 강화로 갔다.
인조의 반정 거사부터 재위 기간에 이르기까지 인조 측과 밀접한 관계에 있었다.
대사간, 대사헌, 우참찬·지중추부사 겸 지경연사, 지의금부사, 춘추관사 등의 요직을 역임하였다. 1636년 병자호란 때는 노구를 이끌고 왕손을 호종하였다.

시호는 정헌(貞憲)이다.
저서에 『서포기문(西浦記聞)』이 있다.
부인은 전주이씨(1566-1650)이며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