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당의 아버지. 자는 대관(大觀), 호는 하곡(霞谷)

1615년(광해군 7)에 진사시에 입격하고 1619년(광해군 11) 정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승문원부정자로 보임되었으나 아버지 박동선이 (인목대비) 폐모론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양사의 탄핵을 받고 유배되자, 그도 역시 사직하고 시골에 내려와 독서로 자적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에 참여해 정사공신 3등에 책록되고, 2년 뒤엔 금주군(錦洲君)에 봉해졌다.
이후 홍문관정자, 병조참의, 동부승지, 남원부사, 대사간, 대사헌, 홍문관부제학 등을 역임하였다.
1625년(인조 3) 부응교 유백증 등과 함께 대사헌 남이공이 광해군 때에 당파를 만들고 권력을 휘둘렀다는 이유를 들어 탄핵했으나 오히려 자신이 함평현감으로 좌천되었다.
1626년 문과 중시에 급제한 다음 해엔 동부승지가 되어 호패법 강화를 주장했다.

이후 대사간으로부터 붕당을 만들어 자기파를 천거했다는 탄핵을 받고 좌천되어 남원부사가 되었다. 남원부사 재직 시에는 관내의 도적을 색출하는 등 선정을 베풀었다. 인조반정 이후 소서파(小西派)의 핵심 인물로 말을 과감하게 한다는 칭찬이 있었으나, 급하고 곧은 뜻이 지나쳐 자기 의견만을 주장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시호는 충숙(忠肅)이다.
부인은 양주윤씨(1597∼1649)로 슬하에 4남 1녀를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