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백년을 이어온 가족의 유대 서계 박세당종가
...관리자 2004-09-23 2242  
 

만울림 2004년 9월
풍경이 있는 여행에 [삼백년을 이어온 가족의 유대 서계 박세당종가]

풍경이있는여행 - 반남(潘南) 박(朴)씨 서계 박세당 종가
글·사진|이상희 자유기고가

삼백년을 이어온 가족의 유대
가문의 울타리가 가족을 지켜주던 시대가 있었다지만, 요즈음의 가문이나 족보는 예전만큼의 권위를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가문에 대해 얘기할라치면 고루한 사람 취급 받기 십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우리 주위에는 일년 내내 이어지는 제사 모시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고, 종가(宗家)의 낡은 집에서 불편한 생활도 참아 가며 전통과 가족의 유대를 지켜가는 사람들이 남아있다.

명절을 앞두고 찾아간 의정부 장암동의 반남(潘南) 박(朴)씨 서계 박세당 선생 종가는 사람들로 붐빌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한적했다. 고풍스러운 사랑채와 사당만 없다면 여느 살림집과 다름이 없어 보였다.
앞마당으로 들어서니 멋진 옛 건물만 세워져 있는 유적지에서는 볼수 없는, 사람 사는 집만의 온기와 정겨움을 금새 느낄 수 있었다.
지은지 3백여 년이 되었다는 사랑채에는 꼿꼿한 선비의 풍모를 그대로 간직한 11대 종손 박찬호 옹(84세)이 지금도 기거하고 있다.
조선조 현종때 서계 박세당 선생이 처음 이곳에 정착한 후, 그의 종손들은 이곳을 떠나지 않고 대대로 살아왔다.
서계의「자찬묘표(自撰墓表)」에 따르면, (집에)울타리는 없었지만 복숭아와 살구나무, 배나무와 밤나무에 둘러싸인 집이라고 했다. 서계는 자신의 집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지 주변의 언덕을‘악구(樂丘)’라고 부르기도 했다.종택은 안채와 안사랑, 바깥사랑, 그리고 행랑채로 이루어진 조선후
기 사대부가의 전형적인 배치형식을 따르고 있는데, 집 앞 어귀에 있는 은행나무와 그 옆의 개울을 따라 세워져 있는 정자, 강당(계당)터 및 그 뒤의 묘택 일대는 조선후기 사대부 생활 공간의 모습을 잘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한국전쟁 기간에 대부분 소실되고 지금은 바깥 사랑채만이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지금이야 전철이 들어오고 6차선 도로가 지나는 요지가 되었지만 10년 전만 해도 수돗물이 들어오지 않아 겨울이면 시냇가 얼음을 깨고 빨래를 해야 했던 산동네였다고 한다.
몸 고생 마음 고생도 마다하지 않고 종가를 지켜 왔지만 박찬호 옹은 아직도 자신의 소임을 제대로 다하지 못한 것 같아 조상에게 죄스럽다고한다.
"조상이 부여한 종손의 임무는 집과 가문을 보전하는 것이지요. 서계 선생처럼 훌륭한 조상을 두었으면서, 그 분의 업적을 바로 알리지 못했습니다. 공무원 박봉에 종종걸음으로 살다보니 조상을 제대로 빛내지 못한 것이 가장 죄스럽습니다. 지금이야 큰 도로가 났으니 화훼단지로라도 땅을 빌려주어 생활에 보탬이 되지만, 그 전에는 논농사가 있는 것도 아니고 밭농사를 제대로 지을 땡이 못돼서 재물마련하기가 힘겨웠습니다."
이제 종가의 일은 대부분 12대 종손 박용우씨(53세)가 맡고 있다.
부모세대가 그랬듯 박용우씨와 그의 두 아들 역시 이집에서 나고 자랐다. 여느 집이라면 부모가 시골에서 올라와 일주일 머무는 것도 귀찮아하는 세태지만 이 집에서는 3대가 한집에서 사는 것이 지극히 당연해 보인다.
돌아가신 시어머니에게서 종가의 살림살이를 이어받은 차종부 김인순(50세)씨는 얼마전 군대에서 재대한 맏아들이 장가를 들면 이집에서 같이 살 계획이라고 했다. 지금 생활하고 있는 공간을 현대식으로 잘 정비해서 새로 들어올 며느리는 고생을 덜했으면 하는 바람이란다.
최근에 박용우씨는 '서계문화재단(www.seogye.com)'을 만들어 조상의 업적을 널리 알리는 일에 힘을 쏟고 있다. 그래서 유실된 안채를 복원해 제대로 된 종택의 모습을 찾는 일도 준비중이다.
“종가의 건물을 지키고 조상의 업적을 널리 알리는 것은 물론 중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내면적인 것이에요. 건물이 아무리 번듯하다고 해도 종가에 그 전통을 이어줄 사람이 살지 않는다면 그것은 살아있는 종가의 모습이 아니지요. 종가가 구심점이 되어 온 가족과 친지가 화목하게 지내게 하고, 우리집 가풍을 현대에 맞게 정리해 문중에 나누어 주어 모두가 서계 선생의 후손임을 자랑으로 삼게 하는 일 같은것이 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박용우씨의 말에는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전통에 대한 자부심과 가족의 유대에 대한 믿음이 가득 담겨있었다.
수백 년을 면면히 이어온 종가와 그 전통을 지켜가는 사람들의 원동력은 과연 어떤 것일까? 비록 유교적 전통이라는 딱딱한 표면 속에 감추어져 있다고 하더라도 그 알맹이는 바로 가족에 대한 애정과 믿음 그리고 사람 사는 도리가 아닐까?

오랫동안 우리나라는 농경국가였다. 많은 일손을 필요로 하는 농사 일은 자연스럽게 가족들을 모여 살게 했고 생활은 일가 친지 위주로 이루어졌다. 그렇지만 세차게 불어온 근대화의 바람은 사람이 사는 풍속까지 바꿔놓고 말았다.
최근에는 늘어만 가는 이혼에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까지 겹쳐 ‘가족 붕괴’라는 살벌한 말까지 들려오게 되었다.
빨리빨리 맑고 투명한 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못된 구습에서도 멀찌감치 벗어나야 했다. 선진사회로 가는 길목에서 가족주의는 때로 ‘낡은 가치관’혹은‘패거리 문화’로 폄하 되었고 청산의 대상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가족에 대한 사랑과 그 끈끈한 유대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어려울 때나 즐거울 때나 함께 할 수 있는 가족이 있다는 것,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 뿌리가 있다는 것은 언제나 큰 힘이 된다.
3백년을 이어온 종가와 자부심과 애정으로 그 가치를 지켜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가족주의 전통이 아직도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