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12. 13 중부일보] 1. 서계공(西溪公)파 종가를 찾아서..(1/3)
...관리자 2004-12-20 1780  
 

종가 - 박남 박씨 서계공파 / 1. 서계공(西溪公)파 종가를 찾아서
박세당 고택엔 대대손손 실학의 향기가...

'물이 고이면 썩는 자연의 이치를 알 만하면 더불어 인생을 논할 수 있다'이 말은 이 땅에 살다 간 수많은 문인 학자가 저마다 가슴으로 느끼고 글로써 세상을 주름잡던 하나의 깨달음이라 할 수 있다.

서계(西溪)는 문자 그대로 분명 서쪽에서 흐르는 시냇물을 의미한다. 그 물이 흘러흘러 망망대해로 갔지만 돌아보지 않는 것이 물의 덕(德)임을 다시 한번 음미하며 지금도 쉬지 않고 흐를 그곳을 찾아갔다.

취재진은 지난 2003년 8월, 문화관광부로부터 이 달의 문화인물로 지정된 '서계 박세당(朴世堂)선생'의 고택이 있는 경기도 의정부시 석천동을 찾아가 그의 후손인 서계공파 종손과 종부를 만났다.

서계선생은 실학의 대가로 선구적 역할을 한 학자요, 야인이며 농군이기도 하였다고 한다. 이점이 흥미로웠다. 과연 양반과 상민의 신분이 확실하였던 시대에 양반인 학자가 어떻게 농부의 길을 갔고 더구나 대의명분을 중시한 주자학이 풍미하던 시대에 실사구시(實事求是)와 이용후생(利用厚生)을 어찌 실행하였는지 의문이 안 갈 수가 없다. 그리고 현재 후손들이 어떻게 살고있으며 무엇을 하는지도 궁금하였다.

지하철 7호선 끝인 장암역사 앞 대로 건너편 '박세당고택' 안내팻말을 따라 120m를 들어가니 석천동, 수락산 자락으로 계곡 물이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 넓은 평지에 한옥과 신축된 사무실이 눈에 띈다. 고택 어귀에 우람한 모습으로 서있는 수령 450년 된 은행나무가 한눈에 선비가 살던 곳임을 알려준다. 특이한 것은 여기저기 개집이 있어 과객이 왔음을 알리듯 짓거나 꼬리를 흔들어 반긴다.

신축한 단층집은 최근 설립한 서계문화재단 사무실이다. 서개 12대 종손 박용우(朴龍雨,53,서계문화재단 이사장)씨와 종부 김인순(金仁順,51,서계문화재단 운영위원) 내외가 취재진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부친인 11대 종손 박찬호(朴贊鎬,83,서계문화재단 설립자)옹은 공직생활을 마치고 이곳을 관리하여 오다가 서계선생의 학문과 사상을 현창하는 것이 자손의 도리임을 깨닫고 문화재단의 설립에 심혈을 기울여 오다 아들 박용우 내외에게 맡겼다고 한다.

종가를 유지해오는 과정에서의 특별한 애환은 없는지에 대한 물음에 종부인 김인순씨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종중 어른과의 견해 차가 있어 괴로운 일이 많았어요. 종중에서는 개발논리에 따라 아파트를 짓자는 의견인데 종가로서의 입장은 이 곳이 선조의 혼과 땀이 배인 곳이며 박세당 선조가 돌아가시고 자자손손 서계공의 정신을 받들기 위하여 임금이 친히 내린 사패지로써 영구보존해야 할 가치가 있다고 보고있어요"

종손인 박용우씨도 한마디 거든다. "그래서 관계기관과 학자의 자문을 받아 문화재단을 설립하여 기념사업을 해가면서 전통을 지키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곳에 아파트가 들어서고 종중인에게 혜택이 돌아간다고 생각을 해보면 종중인 개개인은 편하게 살 수 있다고도 하겠지만 어떻게, 누가 선조의 뜻을 현창하고 계승해 간단 말입니까?" 이어 "그렇지 않아도 요즘세태가 돈이되면 우선 쓰고 보자는 주의인데 잘못했다가는 조상님들께 모두가 죄를 짓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힘은 들어도 종손의 입장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생긴것입니다."

종부인 김씨도 "종중과 종가의 문제점을 알아보기위해서 전국의 유명 종가와 종중을 찾아가서 자문을 구했어요. 종중이 활발하면 종손은 그냥 따라가는 집안이 있는가하면 종가를 중심으로 종중이 뒷받침하여 전통을 이어가는 문중이 있고 또 종손이 잘되어서 직접 종중을 이끌어가는 문중도 있었어요."

지방마다 특색이 있었지만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아무래도 중중보다는 종손의 활동력을 유지해가면서 가문의 전통을 잇는 노력이 돋보이더란다. 그리고 국가적으로 큰 공훈을 세운 선조를 가진 집안이 임금이 하사한 땅이 엄청나게 넓어 그 분을 중시조로 모시고 대대로 묘역으로 관리하여 유지해온 집안도 많다는 말도 함께 전했다.

다른 문중을 다녀보며 느낀 아쉬움을 종부가 또 한번 털어놨다. "최근 경기도 내에 한 종중은 개발 쪽으로 결의하여 땅을 처분하고 고루 나누어 갖거나 아파트를 분양하는 문중도 있었어요. 이러한 문중을 방문하면 종손과 회장이 잘 만나주려고 하지 않았어요. 처분과정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어서 후유증이 있는 것으로 알아요."

지난번 취재에 나섰던 문중 가운데 광명시의 한 문중은 종중과 종손이 입장차이로 팽팽히 맞서다가 먼저 법에 의존했던 종중측이 패소하자 종손내외가 종가의 명예를 걸고 문화보존 사업에 진력하는 모습을 취재진도 들은 바 있는데 이 종손과 종부 역시 그곳에 들렀다 많은 것을 보고 배웠음을 밝힌다.

현재 '경기도 문화재 자료 93호'로 지정돼 있는 박세당 고택이 여행자를 위한 휴식공간으로 한번 스쳐 가는 곳이 되길 원치는 않는 분위기 였다. 다른 문중과 또 다른 지형적 특색을 가진 점을 충분히 활용해 전통문화의 요지로서, 선조의 정신적 교훈이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각인되어 우리의 소중한 정신문화가 널리 알려지게 하고 싶다는 바람을 읽을 수 있었다.

우리 교육현실을 보면 매우 안타깝다. 입시위주의 교육을 지양하고 역사현장을 찾아 조상의 슬기를 몸소 느끼는 현장체험 교육이 강화되어야 한다고 보는데 바로 이곳 박세당 고택은 교통이 편해서 얼마든지 정신문화교육이 가능할 것 같았다.

종손은 "그런의미에서 늦은 감이 있지만 서계문화재단을 설립하였고, 단계적으로 준비해 나가고 있습니다. 어느 던계에 이르게 되면 종중어른들도 이해하시고 동참하리라고 본다"며 힘주어 말했다.

요즘같이 물질적 가치를 앞세우는 세상에 부부가 한뜻이 되어 조상의 정신문화를 가꾸고 전승시키겠다는 경우는 흔치 않은 일이다. 내외가 발로 뛴 만큼 좋은 결과를 맺는다면 경기도의 맥을 이은 선현인 서계 박세당 선생의 얼을 한층 더 빛나리라는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