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3. 7 매일경제] 지조,기개로 일군 명문가
...관리자 2005-04-07 1793  
 

명문가 일구려면 그들처럼, 17세기 양반가문 조명


"맹자가 말씀하시길 부귀가 마음을 방탕하게 하지 못하고, 빈천이 절개를 옮겨 놓지 못하며 위무가 지조를 굽히게 할 수 없는 것을 대장부라 한다고 하셨거늘 , 천년의 뒤에서 구해 보노라면 이 말씀에 부합되는 이는 오직 선생 한 분 뿐 일지니." 시대의 선비 서계 박세당이 세상을 떠난 뒤 후학인 이덕수가 묘비에 쓴 글이다 . 박세당은 한 시대의 지성으로 대장부로 후회없는 삶을 살았다.
문과에 장원 급제한 다음 승승장구하던 박세당은 지조를 굽히지 않다가 벼슬길 에서 물러난 뒤 서울 북쪽 수락산 밑에 은거하며 생을 마쳤다.

그는 왕의 빈번 한 온천행에 따른 폐단을 지적할 정도로 직언을 아끼지 않는 기개를 갖고 있었 다.

그는 또 우암 송시열에 맞설 만큼의 사상적 기반을 지닌 대지식인이었다.

박세당은 "끝내 세상에 고개를 숙이거나 소침해 하지 않았다"는 말로 자신의 인생에 만족했다.

아버지에 이어 과거에 장원급제한 아들 박태보는 숙종조에 인현왕후 폐출의 부당성을 논하다 유배되던 중 죽는다.
명문가는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전문위원인 김학수 씨 는 명문가가 되는 조건을 자신의 저서 '끝내 세상에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삼 우반 펴냄)를 통해 정리한다.

그가 말하는 명문가 조건은 높은 벼슬을 한 것만으로 충족되지 않는다.

우선 역사 발전에 기여하는 가풍이 있어야 한다.

또 변화무쌍한 정치상황과 타협하 지 않고, 어려움 속에서도 용기와 지혜를 발휘하는 저력이 있어야 한다.

여기 에 문화적 소양과 지식의 깊이가 더해지고 그것이 대를 이어 존재하면 명문가 가 된다.

이 책은 17세기를 대표하는 안동 김씨 청음 김상헌 가문, 반남 박씨 서계 박세 당 가문, 한산 이씨 아계 이산해 가문, 연안 이씨 월사 이정구 가문 등 4대 명 문가를 소개한다.

김상헌 가문은 충절과 청렴의 상징이다.

김상헌의 증조인 김번이 문과에 급제 하면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이 가문은 병자호란 때 김상용이 순절하면서 충절의 명성을 쌓기 시작했다.

이후 김상헌은 효종조에 북벌을 주장하면서 국 운을 키우려 했고, 치열한 당쟁의 와중에서 소신을 굽히지 않던 김수흥ㆍ김수 항 형제가 희생됐고, 뒤이어 3대에 걸쳐 화를 당한다.

훗날 명예가 회복되면서 이 가문은 조선조 유일하게 4대에 걸쳐 충신이 나온 '일묘사충(一廟四忠)'이 탄생한 집안이 된다.

이 밖에도 아계 이산해 가문에서는 벼슬과 은거를 절묘하게 조화시키려고 했던 사대부가의 정취를 느낄 수 있고, 월사 이정구 가문에서는 화려한 문학적 전통 과 시련을 극복하는 저력을 함께 느낄 수 있다.

이 책은 명문가의 풍모는 물론 17세기 양반 가문의 문화와 생활상을 상세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매력이 있다.

<허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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