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3. 8 국제신문] '名家'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관리자 2005-04-07 1972  
 

'名家'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끝내 세상에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김학수 지음
김상헌- 박세당- 이산해- 이정구
17세기 4가문 내력과 가풍 소개
문중 나름의 위기극복 저력 추적



좋은 가문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늘 세인들의 존경을 받는다. 이른바 '명가(名家)'는 좁게는 한 집안의 자랑거리지만 넓게는 한 사회의 중심축을 이루는 올곧은 맥이 존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조선시대만으로 범위를 좁혀본다면 명가는 어떻게 규정하는 것이 옳을까. 명가의 첫번째 조건으로는 일단 그 집안 사람들이 어떤 벼슬을 했는가를 꼽는다. 하지만 벼슬이 필수요건은 될지언정 충분조건은 되지 못한다. 명가가 되기 위해서는 벼슬 이외에도 가풍과 저력, 당대인이나 후손들에게 모범이 되는 무엇인가가 있어야 하는 까닭이다. 특정한 이 범주에는 학문 품성 절개 의리 등 여러가지가 포함된다.

특출한 한 사람이 나타났다고 해서 그 집안이 명가가 되는 것 역시 아니다. 자손들을 통해 위업이 이어지면서 하나의 독특한 전통이 확립되어야 명가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

끝내 세상에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김학수·삼우반·1만3000원)는 17세기 조선시대 명가의 내력과 가풍을 짚어본다.

그런데 한국학중앙연구원 전문위원인 저자는 왜 조선 500년을 통틀어 왜 하필 17세기로 범위를 한정했을까. 해답은 이 때가 유학을 중심으로 하는 조선시대의 사회질서가 확실하게 뿌리를 내린 시대이기 때문이다. 16세기만 해도 자녀들이 외가에서 성장하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었고, 처가의 사정에 따라 거처를 옮기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친가나 외가, 처가에 대한 구분이 별로 없었고, 아들과 딸을 달리 여기는 생각도 뚜렷하지 않았다.

하지만 17세기로 접어들면서 자녀균분상속은 장자 중심으로 바뀌고 양자제도도 일반화된다. 아들을 둬서 대를 이어야 한다는 관념이 사람들의 머리에 굳게 각인된다. 이런 변화는 가문의식으로 발전한다. 족보 발행이 활발해지고 서서히 문파가 형성된다. 이 시기를 '문벌가문형성의 시대'라 부르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책은 당시 한양 일원에 기반을 두고 여러가지 면에서 두각을 나타낸 안동 김씨 청음 김상헌, 반남 박씨 서계 박세당, 한산 이씨 아계 이산해, 연안 이씨 월사 이정구 가문 등 네 문중을 소개한다.

안동 김씨 청음 가문은 향반에서 출발해 국반의 반열에 오른 전형적인 사례다. 태조 왕건을 도와 고려왕조를 개창하는데 공을 세운 김선평을 시조로 하는 집안으로 청음 김상헌(1570~1652)의 증조부 김번이 문과에 합격하게 되면서 고향 안동을 탈출해 서울에 정착했다.

김상용 김상헌 대에 이르러 가문이 번창 일로를 걷기 시작했으며 특히 김상용이 병자호란에서 순국하고 김상헌이 청나라에 끌려가서도 기개를 굽히지 않음으로써 충신의 집안으로 칭송을 받았다.

고려 중기 나주 사람 박응주를 시조로 하는 반남 박씨 서계 가문은 태종의 측근이었던 박은을 배출했고 자손들은 17세기의 정치 사상 문화계를 주도한다. 일세를 풍미한 학자 서계 박세당(1629~1703)은 반남 박씨의 백미다. 서계 가문은 직언의 가풍도 지녔다. 박세당은 임금이 온천을 자주 이용하는 것의 폐단을 지적한 뒤 벼슬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토정 이지함, 아계 이산해(1539~1609) 등이 포함된 한산 이씨 아계 가문과 월사 이정구(1564~1635)가 돋보이는 연안 이씨 월사 가문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조선시대 명가다. 아계 가문은 인조반정 이후 기호남인의 핵심으로 활동했다. 그들은 선대가 물려준 법통을 지키면서 문화와 학술의 원기를 재충전했다. 월사 가문은 이정구부터 손자대까지 3대 동안 저술활동을 통해 기호학파의 학풍을 크게 진작시켰다. 아계와 월사 가문의 자손은 지속적으로 벼슬에 올랐으며 누구도 무시못할 사회적 공헌을 했다.

저자는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이들 명가에 대해 무작정 추종이나 존경의 시선을 보내지는 않는다. 오랜기간 명가로 지속되기 위해서는 나름대로의 원칙이 있어야 했다. 책은 청음 가문에서는 청백과 충절을, 서계 가문에서는 타협하지 않는 지성의 강단을, 아계 가문에서는 출사와 은거를 조화시키려 했던 지혜를, 월사 가문에서는 화려한 문한(文翰)전통과 시련을 극복하려는 힘을 뽑아 낸다.

반상의 구별이 없고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존재하지 않는 요즘의 시각에서 볼 때 조선시대의 명가를 조명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드는게 사실. 이에 대해 저자는 "어려움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그것을 극복해 나가는 용기와 지혜를 발휘하는 것이 명가의 저력이 아니겠는가"라며 교훈을 찾을 것을 권한다.


염창현기자 haore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