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는 세상과 제대로 소통하는 게 조상의뜻"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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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하는 세상과 제대로 소통하는 게 조상의 뜻”<세계일보>입력 2010.09.17 (금) 01:37 서계 박세당 12세 종손 일가20100916004131
올해 한가위 명절은 주중에 있어서 직장인이더라도 앞뒤로 휴가를 내면 18일부터 열흘 가까이 명절 분위기에 젖을 수 있다. 한가위 연휴를 앞두고 경기도 의정부시 장암동 서계 종택을 찾았다. 서울 지하철 7호선 종점인 장암역에서 도보로 5분도 안 되는 곳에서 서계 종택이 모습을 드러냈다.


◇서계 박세당의 12세손인 박용우씨(오른쪽에서 두 번째) 가족이 사랑채 앞에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다. 사랑채 마루에서 식구들이 사진을 찍을 때는 적당한 거리를 두며 특별한 모습을 보였던 ‘견공’들도 이번에는 동참의 유혹을 뿌리치기 어려웠나 보다.
언론사의 취재가 있다고 하자, 서계 선생의 12세 종손 박용우(59)·종부 김인순(56)씨가 동생 내외와 아들들을 불러 모았다. 두 아들 천경(29)·천익(27)씨와 동생 내외인 은우(56)·최정자(50)씨를 사랑채에 모은 것. 이들이 안채 대신 굳이 사랑채에 자리한 데는 까닭이 있다. 서계는 불후의 명저인 ‘색경’을 이곳에서 작업했다고 한다. ‘색경’은 “사대부가 조정에 나아가 그 뜻을 행할 때는 군자라 하고, 물러나 땅을 갈아 제힘으로 밥 먹으면 야인이라 했다”는 글로 시작된다.

사랑채는 1999년 경기도 문화재로 지정될 만큼 인정받는 곳이기도 하다. 사랑채에서 바라보니 마당 가운데 서계가 300년 전에 심었다는 은행나무가 우뚝 솟아 있다. 6·25 전쟁 후유증으로 솟을대문도 사라지고, 안채와 행랑채마저 불타 없어졌지만 사랑채는 300년 넘게 사랑을 받고 있다.

여느 해보다 앞서 모여서인지 종부는 기분이 좋아 보인다. 종부는 “올해가 아니더라도 일가친척들은 명절을 앞두고 때가 되면 자발적으로 모인다”며 “시동생 내외도 근처인 서울 창동에 살아서 자주 얼굴을 보지만, 만날 때마다 즐겁다”고 말한다.

“한가위 명절 때 수십명의 손님이 찾아오지만, 예전처럼 식사를 하시는 분들은 많지 않아요. 추석이나 시제를 앞두고 같은 집안끼리 모여서 정겨운 이야기를 나누는 게 조상께 효도하는 것이기 때문에 모이는 것에서 의미를 찾지요.”

마루에서 차를 들던 종손은 “이 마을은 반남 박씨 집성촌이었지만, 다 떠나고 이제 우리 식구만 남았다”면서 “찾아오는 분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다시 다짐한다”고 했다. 종손은 1990년대 중반 대기업 직원 생활을 청산하고 종택 관리에 매진해 왔다. 그만큼 보람도 있었다.


◇서계 선생의 초상화 앞에 선 박용우씨.
“2년 전 돌아가신 아버님만큼은 할 수 없지요. 서울시청 공무원이었던 아버지는 서계 선생의 자손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주변에 무던히도 베풀고 가셨지요. 저도 아이들에게 특별한 것을 부탁하고픈 생각은 없지만, 조상의 은혜는 아는 후손이 됐으면 좋겠어요.”

1980년 박씨 집안으로 시집온 종부는 보다 솔직한 속내를 드러내 보였다. “종택 근처가 개발되고, 땅값이 상승한다고 하니 문중 분들이 자신의 지분을 팔고 나서도 땅을 더 팔자고 아버님을 많이 괴롭혔어요. 아버님을 지켜보면서 종손이 다르긴 다르다는 것을 자각하게 됐지요. 법원 소송까지 하면서 이곳을 지키고 서계문화재단을 세워 서계 할아버지의 뜻을 이었으니까요.”

곁에서 대화를 듣고 있던 동서가 “형님을 보면 종부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며 “그래서 세상의 많은 종부와 맏며느리들이 인정을 받는 것 같다”고 호응한다.

서계 종택은 그린벨트를 포함해 12만평의 들과 산을 거느리고 있다. 뒤로는 수락산이 건재하고 장암역과 도봉산역을 건너서는 도봉산이 앞산처럼 지키고 있다. 산들에 둘러싸여 있어서인지 종택이 들어서 있는 마을에는 군데군데 물길이 있다. 9월 들어서도 비가 많이 내려서인지, 수락산에서 내려오는 계곡물이 맑다. 장암동이 원래 ‘석천동(石泉洞)’으로 불린 까닭을 알 만하다. 석천동은 ‘돌과 샘 사이에 물이 많다’는 의미로 서계 선생이 지은 것으로 전해진다.

1년에 12차례 조상에 제를 지내는 서계의 종손과 종부는 설과 한가위 때면 정성을 더 쏟는다. 이외에도 1년에 한 번씩 모여 서계 선생의 제사를 모신다. 종손은 “원래 음력 9월9일 중양절에 모셔야 하지만, 얼마 전부터는 후손들이 10월3일에 모인다”고 설명한다.

“많은 후손들이 참석하기 좋은 날을 선택한 것이지요. 5년 전까지는 한글날에 모였는데, 한글날이 공휴일에서 제외되자 개천절에 모이는 것이에요. 실학자였던 할아버지처럼 실용을 중시한 것이지요.”

실용주의적 사고방식은 어느 선까지 받아들일 수 있을까. 다문화사회에 걸맞은 질문을 해봤다. 종손은 외국인 며느리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서계 할아버지의 생각이 가장 중요할 것 같아요. 저는 아이들의 아버지로서는 외국인 며느리를 받아들일 수 있지만, 서계 할아버지가 어떻게 생각할지가 중요하지요. 쉽지는 않을 것 같아요. 하지만 할아버지는 실학자였으니까, 그런 상황이 온다면 저로서도 고민이 많아지겠지요. 변하는 세상과 제대로 소통하는 것도 할아버지의 뜻을 제대로 이어 받는 것이니까요. 생각을 바꾸지 않는 것은 한가위나 명절 때만 조상의 뜻을 기리는 것 만큼이나 잘못이잖아요. 변하지 않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있어요.”

의정부=글 박종현, 사진 송원영 기자 bali@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