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신축개관 (동아일보)
...사무국 2011-07-06 860  
  “대대손손 가보, 도둑 맞느니 나라에 맡기자”
한국학중앙연구원 경기 성남에 장서각 신축 개관
동아일보 | 입력 2011.07.06 03:19 | 수정 2011.07.06 13:56 | 누가 봤을까? 50대 남성, 제주





[동아일보]

《2006년 1월 4일 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경북 경주시 양동마을의 오래된 가옥. 모두가 잠든 시각 경주손씨 우재(愚齋) 가문의 종가인 그곳에 정체모를 그림자가 드리웠다. 별채에 보관하던 고서와 400년넘은 병풍이 그날 밤 사라졌다. 2m 높이의 이 병풍은 조선 정조 때의 문신 정연(鄭沇)이 송나라 시인 소동파의 '적벽부'를 흘려 쓴 가보였다. 그해 4월 종손인 손성훈 씨는 집안에 남아있던 고문헌들을 모두 장서각(藏書閣)에 기탁했다.》





"집안에 고문서가 많다고 소문이 나 도둑이 많이 들었어요. 심지어 조상의 초상화를 훔쳐간 장물아비가 그 초상화를 사지 않겠느냐고 전화를 걸어온 일도 있었죠."

5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하오개로 한국학중앙연구원 내에 새로 지은 장서각 개관식에는 손 씨를 포함해 장서각에 고문헌을 기탁 또는 기증한 전국 43개 가문의 대표들이 참석해 고문헌에 얽힌 일화를 공개했다.

장서각은 고종이 계획하다 무산됐던 '제실(帝室)도서관'에서 비롯돼 1911년 '이왕직장서각'으로 출발했다. 원래 왕실 도서관의 역할을 했지만 지금은 명망 있는 문중이 맡긴 고문서와 목판까지 아우르는 고문헌의 보고가 됐다.

조상 대대로 내려온 가보를 장서각에 맡기는 이유는 도난의 우려 때문이다. 손 씨는 "문화재청에서 제공한 금고를 단단하게 채워두어도 소용이 없었다"고 전했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가보급 고문헌을 도난당했다고 신고한 건수는 547건, 신고 건수당 도난당한 자료 수가 많게는 3000점이 넘는다. 경남 합천의 한 서원에선 2008년 2월 서고의 벽면을 완전히 부수고 침입한 괴한이 500여 점의 고문헌을 훔쳐간 사건이 발생했다. 2006년 2월엔 경북 영덕의 박씨 종택에 있던 현판을 뜯어간 사건도 있었다.

민간에서 기탁한 문서들은 유일본인 데다 소장 및 전래 경위가 분명해 학술적인 연구 가치가 크다. 장서각에 있는 보물 25종 가운데 6종이 민간에서 기탁한 이후 보물로 지정된 문헌들이다. 반남박씨 서계 가문이 위탁한 '서계유묵(西溪遺墨)'은 보물 제1674호다. 당쟁으로 아들 둘을 잃고 정치에 염증을 느껴 탈속을 추구했던 서계의 솔직한 심정이 담긴 필첩이다. 진주정씨 우복(愚伏) 가문이 기탁한 동춘당필적(同春堂筆蹟)은 보물 제1672-1호다. 동춘당 송준길은 왕희지의 서체를 새롭게 해석해 우암 송시열과 함께 양송(兩宋)으로 불렸던 서예가다. 서계 가문의 종손 박용우 씨는 "우리가 보관하면서도 문헌의 가치를 몰랐다. 장서각에 맡기니 가문의 역사에 대해 오히려 많이 알게 됐다"고 말했다.

민간 위탁 고문헌이 늘어나자 한국학중앙연구원은 지하 2층 지상 3층 규모로 장서각을 새로 지어 건립 100주년이 되는 올해 개관했다. 4000m² 규모의 수장 공간엔 유네스코 세계기록 유산인 조선왕조 의궤와 동의보감 초간본 등 조선왕실 자료 9만여 점과 43개 가문이 기탁해온 4만여 점의 고문헌이 보관돼 있다.

장서각에서는 다음 달 31일까지 '조선의 국왕과 선비'라는 주제로 개관기념 전시회가 열린다. 왕실 및 민간 자료 130여 점이 전시되는데 명가 기탁본 원본 70여 점을 볼 수 있다. 입장은 무료. 031-709-8111

김진 기자 holyjj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