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당은 1629년(인조 7) 8월 19일 남원부 관아에서 정사공신 박정(朴炡)과 양주윤씨 사이에서 4형제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당시 숭품(崇品:종1품)에 올라 기로소에 들어간 조부 박동선(朴東善)은 한 나라의 원로로 추앙되었고,
왕실의 따님인 조모 이씨는 누구보다 세가의 법도를 중시한 교양있는 여성이었다.
여기에 저마다 재질이 출중하여 가문의 미래로 기대되던 3인[세규, 세견, 세후]의 천륜(天倫)이 있었으니,
박세당의 출생은 덕문(德門)의 계속되는 경사였다.

이처럼 박세당은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행복은 그다지 오래가지 못했다.
우선 그의 나이 4세 때인 1632년(인조 10), 인조반정 참여로 출세를 보장받았던 아버지가 조부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면서 불운이 시작되었다. 이로부터 3년이 지난 1635년(인조 13)에는 장형마저 사망함으로써 집안에는 상화(喪禍)가 겹치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이듬해인 1636년에는 병자호란이 발생하여 소년 박세당은 할머니와 어머니를 모시고 피난길에 올라 원주, 청풍, 안동 등지를 전전하는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이윽고, 전쟁의 기운은 진정되었지만 서울(성명방, 城明坊)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청주, 천안으로 이어지는 고달픈 우거생활은 계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