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노원구, 경기도 의정부시, 남양주시 별내면에 걸쳐 있는 산. 높이 638m.
서울과 의정부간의 국도를 사이에 두고 서쪽에 자리잡은 도봉산 및 북한산을 마주보고 있다.
대부분이 돌산으로 화강암의 암벽이 노출되어 있기도 하나, 산세는 그다지 험하지 않다.

동쪽의 금류계곡에는 금류동(金流洞), 은선동(隱仙洞), 옥류동(玉流洞)의 세 폭포가 있어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삼각산, 도봉산과 더불어 서울 외곽의 3대 명산이다.
서쪽 사면에 쌍암사(雙巖寺)와 석림사(石林寺)가, 남쪽 사면에 계림암(鷄林庵)과 흥국사(興國寺)가 있다.

뛰어난 절경에 예로부터 문인, 묵객들의 발길이 그치지 않았다.
매월당 김시습과 서계 박세당이 이곳에 오랫동안 머물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이전에도 서거정, 남효혼, 채수, 유숙, 이안눌, 신익성, 정두경, 김득신, 김수흥, 남용익 등 일류 문사들의 족적이 미쳤던 곳이다.
김시습은 한 시대를 풍미한 통유(通儒)로서, 계유정난 이후로는 탕유(蕩遊)로서 생을 달관한 인물이었다.
한 때는 그 유명한 매월당에서 수락산의 주인노릇을 한 적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수락산의 격을 한층 더 높여 놓았다.
그의 아호 동봉(東峯) 역시 수락산에서 연유하는 것이다.

한편 환로에 염증을 느낀 박세당도 이른 나이인 40세(1668)때부터 수락산에 은거하기 시작했다.
석천동(石泉洞)이란 지명 자체가 그가 붙인 이름이며, 그의 호인 서계(西溪 :김시습의 동봉
東峯에 대가 된다.)도 수락산의 개울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수락산 주인이라고 자처할 만한 이곳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으며, 각종 저술이 이곳에서 탄생되었다.

한편 노론의 중심축인 안동김씨 청음(김상헌)가문과 소론의 반남박씨 서계(박세당)가문은 남양홍씨 홍심(洪深)가문과의 인척관계에 따라 오래전부터 별 문제없이 나란히 수락산을 경영해왔다. 김수흥은 옥류동에 정자를 건립했고, 박세당은 석천동을 경영하였다.

그런데 두 가문은 정쟁의 와중에서 노론과 소론으로 갈렸고,『사변록』을 변파하는 과정에서 극단으로 치닫고 말았다.
이후 노론세력 중에서도 특히 수락산 인근 지역에 별장을 마련하고 있었던 연안이씨 정관재(이단상)가문, 안동김씨 청음가문, 의령남씨 호곡(남용익)가문의 자제들은 수시로 수락산을 유람하며 노론가문의 극성함을 과시하였다. 특히 이단상의 아들 이희조의 수락산에 대한 점유욕은 더욱 강렬했는데, 별업의 규모를 확장했을 뿐만 아니라 안동김씨, 연안이씨, 여흥민씨 등 노론가문의 명사들과 대대적인 수락산 유람을 추진하기도 하였다.

이때는 서계 박세당이 석천으로 들러온 지 벌써 15년이 되는 해인데, 서계에 대한 표현이 일언반구도 없는 것을 보면,
수락산을 둘러싼 노,소론 명사들의 심리가 어떠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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